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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열린정원

강근호선생 추모비

강근호선생 추모비

  • 종류 :
  • 면적 :
  • 시대 :
  • 소재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 산1번지(대천공원 입구)
▣ 강근호의사(1898-1960, '90애국장)
애국지사 강근호(姜槿虎 : 異名 姜華麟)지사는 함남 정평 출신으로 1916 학생소요사건으로 일경에 수배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직후 무장독립군의 산실(産室)인 신흥(新興)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 6월 이장령 참모장과 함께 북로군정서에 부임하여 사관연성소 교관 및 구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10월 청산리전역(戰役)에서는 대한군정서 제1중대장으로 최전선에서 중대원을 지휘하여 역사에 빛나는 전공을 세웠다. 그 후 1921년 5월 시베리아 흑하사변, 1922년 10월 고려혁명군 교관, 1926년부터 민족적 사회주의 독립운동 등으로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가 만주에서 조국광복을 맞이하였다.
1947년에 귀국한 선생은 1949년 2월 52세의 나이로 陸士(8기특별4차)에 입교하여 장교(군번 13193)가 되어 建軍과 6·25를 거쳐 1956년 5월 103사단 118연대장(중령)에서 전역하였다.
1960년 2월 영도 영선동에서 63세로 作故한 선생의 유해(遺骸)는 1964년 장산으로 모셔왔다가 1990년 12월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선생의 공로를 인정하여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제955호),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제103호)이 추서되었으며, 2000년 4월 육군 53사단 장병일동은 선생의 유택지(幽宅地)에 추모비를 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름없이 사라졌던 선생의 애국혼은 2002년 전기(傳記)『만주벌의 이름없는 전사(戰士)들』이 출판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추모비는 2003년 9월 국가현충시설로 지정되었으며, 평생을 항일독립운동과 진충보국(盡忠保國)에 받친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자 2005년 4월 『애국지사 강근호 선생 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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